정확한 단어들을 통해 간간이 표현되기도 하고 어떤 기념비로서 건립되었을 수도 있었던, 갑작스레 떠오르는 기발한 발상들--그러나 연결되지
않은 채 띄엄띄엄 나타나, 명확한 분절과 표현이 요구되었던... 하지만 나의 의지는, 그것이 미학을 동반해야 할 경우엔 협조하려
들지 않았고, 생각들을 잠재적인 어떤 이야기의 고립된 단락들로 남겨둘 줄을 몰랐다. 뛰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떤
의미심장한 순간으로써, 간결하지만 함축적인 시각들로써, 연결되는 구절들로써 어떤 완결된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을 때만 비로소 빛을
발했을 몇 개의 문장 뭉치들... 몇몇 재치있는 말들도 있었고 기발한 구석도 있었지만, 그것은 결코 쓰여진 적 없는 주변 텍스트
없이는 알아 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
나는, 모든 종류의 위대함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진정으로 위대해지고 싶은 능력의 결여로만 이루어져 있었던 내 인생을
마감하려 한다. 나는 어떤 확실성에 도달했을 때마다, 최상의 확실성에 도달했던 이들은 미치광이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곤 했다.
세부에 주목할 줄 알고, 완벽주의자의 본능을 갖추었으며, 절대 행동을 자극하려 들지 않는 것, 이것은 모두 단념으로 이어지는
특징적 자질들이다. 되는 것보다 꿈꾸는 것이 더 낫다. 우리가 꿈 속에서 원하고 있는 것을 (직접) 이루는 것은 너무도 쉽다!
수천 가지 생각들이 뒤죽박죽으로 뒤엉켜, 각각이 운율도 합리성도 없이 이리저리 뻗어가는, 하나의 시. 그런 것들이 너무도
많아서 그걸 언제 잃어버렸는지는커녕, 언제 다가왔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었다.
결국 남는 것들은 소소한 감정들이다. 고요하게 뻗은 전원 풍경 위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이 내 영혼을 휘저을 수도 있다.
교향악단의 연주보다도, 아득히서 들려오는 마을 밴드의 큰 소리 한 번이 내 안에는 더욱 복잡한 소리의 향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문간에 앉은 노부인의 모습에 내 심장은 녹아내린다. 전선 위에 앉은 참새의 모습이, 마치 진실 그 자체와 불가분으로 엮여있는
어떤 모습이기라도 한 양, 그 이유를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를 기쁘게 한다.
*
나는 오래된 종교의 신들은 물론 현대의 비종교의 신들에 대한 신앙조차 잃어버린 세대에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이 세대에 포함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속해 있다. 나는 인간성을 거부하듯 여호와도 거부한다. 나에겐 그리스도든 진보든 모두 같은
세계에서 온 신화이다. 나는 성모 마리아도 믿지 않고, 또 전기도 믿지 않는다.
나는 항상 밀리미터 단위로 생각을 했고, 글을 쓸 때의 언어와 내가 표현하고 싶은 생각의 조직 면에서 모두 세심했다.
내 어머니의 죽음으로 내가 삶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했던 외부의 끈들 가운데 마지막 끈마저 끊어져 버렸다. 처음에 나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몸을 휘청거리게 하는 그런 종류의 어지럼증이 아니라, 두뇌 속의 완전한 공허, 공허에 대한 본능적 자각과 같은
종류의 어지럼증이었다. 그러면서 그때까지는 불안감의 형태로 경험했던 지루함이 지쳐 마침내 순수한 권태로 빠져들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땐 특별히 느끼지 못했던 그 사랑이, 그녀가 돌아가시고 나자 비로소 내겐 너무도 분명해졌다.
모든 것의 진정한 가치를 우리가 발견하는 방식인, 그 사랑의 부재를 통해, 나는 내게 애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마치 공기처럼
그 사랑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다만 느끼지 못한 채 그것을 숨쉬어 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행복만 제외하고, 행복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췄다. 그 조건들은 서로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샤토브리앙의 청소년기의 르네[각주:1]가 성숙했더라면 곧 나와 같은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겉모습은 다를지 몰라도 우리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는 성향이나, 불만을 품은 것이나 모두 똑같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든 불안의 징후 속에서도, 청소년들에겐 여전히 살고자 하는 맹목적 의지가 있다. 루소는 [......],
하지만 그는 유럽을 호령했다. 샤토브리앙은 징징 대고 공상했지만, 국가의 수상이었다. 비그니[각주:2]는 자기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 안테루 데
켄탈[각주:3]은
사회주의를 설교했다. 레오파르디는 문헌학자였다.[각주:4]
나는 펜을 내려놓지 않은 채 펜을 놓고, 어두운 전원의 풍경을 향해 나있는 창문을 통해, 높이 뜬 둥근 달의 달빛이 마치 새롭고
가시적인 공기인 듯, 공기 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본다. 끝없는 명상과, 헛된 꿈들과,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글도 쓰지 못하던
불면의 밤들 가운데 이런 풍경이 내 곁에 머물러 주었던 것이 대체 언제였던가.
내 심장이 마치 비유기적인 무게처럼 느껴진다.
가축들마저 고요한 새벽의 완벽히 검은 고요 가운데, 그들의 윤곽은 마치 진실이 존재하는 듯 두드러져 보인다.
*
이성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성은 어떤 지침도 제공하지 못한다. 이 자각이 나로 하여금, 어쩌면 인류의
타락이라는 신화 속에 감추어져 있던 무언가를 내게 들춰 보여준 것 같았다. 마치 우리의 육체적 시선이 번개를 맞았을 때처럼,
아담으로 하여금 소위 선악과를 먹도록 이끌었던 유혹의 끔찍하고도 진실한 의미가 나를 후려쳤다.
지성이 존재하는 곳에서, 삶은 불가능하다.
*
모든 형이상학적 사유에 대한 나의 근본적 단념과 불가해한 것을 체계화하려는 모든 노력들에 대한 나의 도덕적 혐오감은, 이런 태도를
공유한 대부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유능력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심사숙고했으며, 그렇게 해서 나는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일종의 심리학적 인식론을 구체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나로 하여금 체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을 분석하는 방법을 창안했다. 나는 철학이 기질의 발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내가 발견했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마도 이를 먼저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지향을 위해, 기질이 곧 철학이란 사실을 발견했다.
문학적인 문제에서나 철학적인 문제에서나, 자기에 대한 집착은 내겐 항상 예의가 부족한 것이라고 느껴졌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이 문서의 형태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로 했다면 감히 하지 않았을 것들을, 많은 이들이, 글에는 쓴다.
어떤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설명과 분석으로 책장을 메우고 또 메우면서도 결코 --혹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자기 성격에 관한 일장연설로 자신이 독자를 질리게 하고 있다는 것을 --독자가 아무리 잘 수용해주는 사람이라 해도
말이다--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나는 비관주의가 많은 경우 성적인 거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는 레오파르디와 안테루 드 켄탈의 경우엔
명백하다. 자신의 성적 문제 위에 지어진 체제란, 내 눈엔 극히 비도덕적이고 상스러운 것으로밖엔 안 보인다. 상스러운 사람들은
모두 반복되는 성적인 모티프를 필요로 한다. 사실, 그것이 곧 그들을 구분지어주는 것이다. 그들은 성적인 농담이 아니면 우스갯소리
하나도 할 줄 모르고, 섹스와 관련된 언급 없이는 아무런 재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들은 모든 커플들이 커플인 이유조차 성적인
것에서 찾는다.
우주가 대체 누군가의 성적인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나는 이 글에서 내가 제시한 원칙을 스스로 위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글은 증언이고, 증언을 할 때 증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에겐 항상 더 많은 것을 용인해주기 마련인데, 지금 이
말들은 곧 죽어가는 이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각주:5]
*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개인주의자들이라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개인주의가 동적이지 않고 정적이라는 데 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보다 우리의 생각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을 우리가 행하지도 않고, 우리가 우리
생각대로 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망각한다. 우리는 사물들의 일차적 속성이 운동이듯, 삶의 일차적 기능은 행위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우리가 그것을 생각해냈다는 이유로 우리의 생각에 비중을 두고, (그리스 철학자의 말을 인용해 보자면[각주:6]) 우리들 자신을 모든 것의 척도로 둘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의
규범이자 표준이라고 여김으로써, 우리는 사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비판조차 해서도 안되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 안에서
우주에 대한 해석, 혹은 최소한 우주에 대한 비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가장 경박하고도 가장 심약한 존재가 이
비판을 어느 순간 해석으로 격상시키고, 이 해석은 연역되지 않고 귀납되어, 환각처럼 포개어진다. 그것은 아주 희미하게만 보이는
어떤 것에 토대를 둔 환상이란 점에서, 엄격한 의미의 환각이 분명하다.
근대의 인간은, 만약 불행하다면, 비관주의자다.
우리의 개인적 슬픔을 우주 전체에 투사하는 이런 식의 태도에는 분명 뭔가 경멸받아 마땅한 요인, 비하적인 요소가 있다. 우주가
우리 안에 있다고 가정한다거나, 혹은 우리가 우주의 일종의 핵, 전형, 상징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낯뜨거울 만큼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내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선한 창조주의 존재에 대해서 약간의 장애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창조주의 부재라거나, 악한 창조주의 존재, 심지어 중립적 창조주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되진 못한다. 그건 기껏해야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할 뿐인데, 이는 사실 그 누구도 부정한 적이 없는 사실이란 점에서, 발견이라고 부르기조차 뭣하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것이란 점 때문에 우리의 감정을 중시하고, 마치 우리가 온갖 종류의 진리를 우리의 진리라고 불러왔듯 우리의 내적 허영심을 자부심이라고
부른다.
그 자신이 바로 감정과 지성을 동일한 강도로 소유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안테루 데 켄탈은 다른 어떤 시인보다도 더
잘, 우리의 영혼을 황폐화시키는 갈등에 대해 표현한 바 있다. 여기서 갈등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바로 믿음을 필요로 하는 감정의
욕구와 믿음이란 것이 불가능한 지성의 측면 사이의 갈등이다.
나는 마침내 삶의 지적인 원칙을 위한 간단한 인식 몇 가지에 도달했다.
나는 내 문학 작품들을 위한 스케치들을 모조리 태워버렸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후회도 없다. 내가 세상에 남길 것은 바로 그것밖에
없다.
*
이 세계의 미스테리에 얽힌 비밀이 뭐가 됐든, 그것은 아주 복잡하거나 아주 단순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만약 그것이 아주
단순하다면, 그 단순성은 인간은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단순성이다. 대다수 철학 이론에 대해 내가 불평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 있다. 그들이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는 증거는 그들이 대부분 설명을 하려고 든다는
점인데, 왜냐하면 설명이란 곧 단순화이기 때문이다.
소암 제닌스의 악에 관한 이론[각주:7]은 공상적인 혐의는 있을지 몰라도 --이를테면 그가 제시한 선의 관념과, 악을 창조한 전능한 신이라는 관념
같은 것--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다 창조했다는 점에서 최소한 부조리하진 않다. 소암 제닌스의 가설은, 비록 그것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최소한 명쾌한 유비를 가능케 한다는 이점은 가지고 있다. 때로는 그들에게 선한 결과로, 때로는 악한 결과로,
또 어쩌면 때로는 악한 의도였는데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으로, 혹은 그 반대로, 우리가 우리보다 열등한 존재들의
삶에 개입하듯이 --이를테면 우리의 들판에 있는 소떼나 우리의 하늘에 있는 새들에게 우리가 하듯--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들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충분히 가능하다.
언젠가 한번 나에게 --진실한 믿음에서라기보다는 빈둥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던 중에-- 삶이 만약 모든 존재의 법칙이라면,
죽음은 분명 외부의 개입에 의해 비롯될 수밖에 없다는 것, 말하자면 모든 죽음은 폭력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떤 죽음들은 명백히 가시적으로 폭력적이고, 그 폭력은 대부분 우리 스스로가 초래한 것은 경우가 많다. 다른 형태의 죽음, 소위
자연사라고 하는 것 역시도 똑같이 폭력적인데, 다만 그것은 우리의 감각에는 포착되지 않는 존재들에 의해 초래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국가가 아무리 타락했더라도 결국 외부의 침략과 폭력에 의해서만 멸망하는 것처럼, 인간의 삶의 종말 역시도
그와 같이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살 자체도 -나의 논리적 몽상의 과정에서 떠오른 것인데-- 외부로부터 비롯된 충동일 수 있다.
어떤 삶도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끝내진 않는데, 다만 자살의 경우엔 죽음의 도구가 곧 그와 동일한 죽음의 희생자가 되는 것일
뿐이다. 나는 이 변덕스러운 생각이 한때 --아주 오래 전, 내가 대학을 졸업한 직후에-- 나를 자살로부터 구원해주지 않았더라면 이
생각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렸을 수도 있었다. 비탄에 빠진 나의 삶은 산산조각 나 있었지만, 나의 이 이론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가능성과 --왜냐면 그것이 맞을 가능성과 틀릴 가능성은 반반이었기 때문에-- 만약 그것이 맞았을 경우, 다른 누군가의
도구가 되어 노예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아서 느꼈던 뜨악함이 당시 내가 그 발걸음을 내딛는 것을 가로막았으나,
결과적으로 나는 그것을 단지 이 순간까지 미뤄 왔던 것에 불과한 셈이었다.
*
나는 내가, 혹은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 해도,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기는커녕, 효과적으로 완화해줄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믿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그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했다. 가장 미미한 인간의 괴로움조차, 심지어 단 한 사람에 관한 일말의
생각이라고 해도, 나에겐 항상 신경이 쓰여 나를 괴롭혔고, 나 자신에게만 완전히 집중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영혼을
위한 모든 치유제들이 무용하다는 나의 확신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들어올려 무심함의 정상 위에 올려 놓은 뒤, 그 똑같은 확신의
구름에 가려진 땅 위의 온갖 요란법석한 풍경은 내 눈에 보이지 않아야 아귀가 들어맞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감정들을 완전히 진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걸어가지 않겠다고 선택하듯, 느끼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좀더 고양된 감정들로 느낄 수 있게 된 그 순간부터 항상 그렇게 목격해 왔듯, 아무리 건장한
신체를 가진 인간이라 해도 나서서 구할 수 없는, 익사해가는 한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기만 하는 마비된 자처럼, 세상의 모든 고통,
불의, 비참함을 목격한다. 나에게 타인의 고통은 단순한 고통 그 이상의 것이 되어갔다. 거기엔 바라보아야만 하는 고통, 그것이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바라보는 고통, 그리고 그 치유불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이 내가 치유를 위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끼게 해주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고결한 기분을 향유할 사치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고통이었다.
뭔가를 생각해보기 전엔 뭔가를 먼저 바랄 줄을 모르는 나의 무능력, 나를 완전히 던지지 못하는 나의 무능력, 모든 사람의 결정을
가능케 해주는 유일한 방식--즉, 생각이 아니라 결정을 하는 것--을 따르겠다고조차 결정하질 못하는 나의 무능력, 바로 이런 나의
결단력 부족이 내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 나는 감정의 샘과 행동의 건초더미 사이에 놓인 갈림길에서 선 채로 죽어가는
뷰리단(Buridan)의 나귀[각주:8]다. 내가
설혹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죽었겠지만, 갈증과 허기 둘 중 하나 때문에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거나 느낀 것은 필연적으로 관성의 한 형태로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행동을 지시해주는 나침반이 되어주는 생각이
내게는, 발자국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을 곳에서 우주 전체가 펼쳐지는 것을 보여주는 현미경이었다. 정해진 한 지점부터 다른 정해진
지점까지의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논증했던 제논의 역설이 나의 심리적 자아를 중독시킨 이상한 약물이기라도 한 듯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치 장갑 속에 쏙 들어간 손처럼, 칼을 움켜쥔 병사의 주먹처럼 의지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감정이 내게는
항상 --우리를 너무나 강렬하게 사로잡아 움직일 수조차 없게 만드는 분노라든가, 실은 두려움이 도망을 가게 만들어야 할
상황에서, 겁에 질린 사람을 선로 위에 얼어붙은 듯 서 있게 만드는[각주:9] 패닉의 감정처럼 (내게
패닉이란 감정을 너무 강렬하게 느끼는 것을 의미했다) 다만 헛되기만 한-- 생각의 또 다른 형태였다.
내 삶 전체는 지도 위에서 패배한 전투와 같았다. 전장에 나갔더라면 어쩌면 소멸되어버렸을 수도 있는 나의 비겁함은, 그나마
전장에까지 가지도 못했다. 그것은 혼자 있는 참모총장을, 패배에 대한 확신으로, 그의 집무실까지 쫓아가 괴롭혔다. 그는 자신의
전쟁 계획을 감히 수행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왜냐면 그 계획이란 어차피 완벽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또한 그것이 결코
완벽해질 수 없으리라는 그 확신이 완벽을 추구할 모든 욕망을 꺾어버려, 그는 그것을 완벽하게 다듬을 (물론 그것이 진정 완벽해질
가능성이란 애초에 전무했지만) 엄두를 아예 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 속에는, 그의 계획이 비록 불완전하다 해도, 적의
계획보다는 좀더 완벽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가능성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실상, 하느님 이후로 내게서 항상 승리를 쟁취해갔던 나의
진정한 적은, 바로 그 완벽에 대한 관념, 세상의 모든 군대의 선봉에 서서 --세상의 모든 무장한 인류의 비극적 선봉으로서[각주:10]-- 내게 행군해
왔던 그 완벽에 대한 관념이었다.
(to be continued...)
'르네'는
작가 프랑소아-르네 샤토브리앙의 다분히 자전적 소설에 등장한 작가와 동명인 주인공이다. 1802년 <기독교의 정수>의
일부로 출판되었다. [본문으로]
Alfred de Vigny : (1797-1863), 프랑스의 시인이자 산문, 희곡, 소설 작가. 사랑의 환상이 깨지고,
정치에서도 실패하고, 프랑스 학계에서도 별로 환영받지 않았던 그는, 사회생활에서 물러나 점점 비관주의적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삶이 우리에게 내린 고통스런 저주 아래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하게 고귀한 대응책은 은거해서 금욕주의적으로 살아가는
것밖에 없다며 그런 삶의 방식을 추천했다. [본문으로]
Antero de Quental : (1842- 1891)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 주로 소네트 작품과 척학자가
되고 싶어한 그의 열망으로 기억되었다. 정치에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며, 포르투갈의 사회주의 운동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케탈의 병적인 비관주의는 그의 정신적 불안정과 맞물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악화되어, 마침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본문으로]
이를 달리
표현해서 "레오파르디는 그리스어를 할 줄 알았다"라고 한 것이 또 다른 판본에서 보인다. [본문으로]
이 단락은
낱장의 종이에 타이핑되어 있었으며, "비생산자의 직업 (제목)"이라는 문구가 앞에 적혀 있었다. 짐작컨대,
이 단락만을 위한 제목이라기보다, 테이브 남작의 완성된 작품 전체의 제목 중 하나로서 고려했던 듯하다. [본문으로]
소암
제닌스(Soame Jenyns)의 악에 관한 이론: 영국 의회의 의원 중 한 사람으로서, 제닌스(1704-1787)는 시인이자
비평가, 에세이 작가이기도 했다. 여기서 페소아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본성과 악의 기원에 대한 자유로운
질의"라는 제목의 에세이인데, 페소아는 이 글을 1934년 12월 18일자 알바로 데 캄포스의 시에서도 인용한다. [본문으로]
14세기의
프랑스인 학자 장 뷰리단은 자유의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만약 나귀의 경우 물 한 틍과 건초 한 통과 똑같은 거리 만큼
떨어진 지점에 서서 갈증과 허기 사이에서 괴로울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본문으로]
다른
본에서는 이를 "겁에 질린 사람을 나무처럼 서 있게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본문으로]
이 구절은
낱장의 종이에 필사되어있던, 1930년 3월 27일자로 기록된 유일한 글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