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단순한 실수였는지, 어쩌면, 그런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지만, 아주 어쩌면, 어떤 편집상의 의도였는지- 몰라도, 미국의 일본근대사 연구자인 해리 하루투니언(Harry Harootunian)의 저서 "History's Disquiet"의 한국어 번역(『역사의 요동』)에는 원본에 있던 한 단락의 인용이 빠져있다. 책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 서두에 가장 먼저 실어놓았던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소설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Book of Disquiet"(영문제목)의 일부. 책 제목을 "History's Disquiet"으로 지은 것으로 봐서도, 이 인용이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암튼 이 책 갖고 세미나 해야 했던 적이 한 번 있어서 몇 년 전에 번역해서 올렸던 것, 찾아서 올린다.
그리고 난 이 계기 때문에 페소아를 알게 됐는데, 그러고 나서 나중에 루시드 폴 홈페이지 글을 읽다가 보니, 스위스에서 공부하던 시절 리스본에 갔다가 친구가 추천해줘서 페소아가 자주 가던 카페에도 가고, 페소아의 책도 한 권 샀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역시 폴은 풍부한 문화적, 지적 토양 위에서 자란 듯?^^ (4집이 좀 맥빠지긴 했었지만, 그래도 폴은 여전히 좋으니까-) 암튼 그저 한 단락 뿐이었지만 이 단락을 읽고 나서 페소아란 사람이 궁금해져서 그의 책이 한 번쯤 읽어보고 싶어졌는데, 아직 한국어 번역본은 없는 듯.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러했듯, 지금 나는, 나의 느낌들에 대한 내 경험에 의해, 그저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데서 오는 고통에 의해, 그저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동요(動搖)에 의해, 그리고 단 한 번도 알았던 적 없었던 무언가를 향한 노스탤지어에 의해, 또 다시, 번민한다. . . . 그리고 빛은 사물들로부터 고요하고 완벽하게 뿜어져 나와, 그것들을 미소 띤 슬픈 현실로 감싼다. 세상의 모든 신비는 이 진부함으로부터, 이 거리로부터 조각되어 나와 내 눈앞에 펼쳐진다. 아, 삶의 일상적인 것들은 어찌 이토록 신비롭게 우리 곁을 스쳐가는가! 빛의 손길이 닿은, 이 복잡한 인간적 삶의 표면에서, 시간은, 망설임 섞인 미소는, 신비(Mystery)의 입가에 피어오른다. 너무도 모던한 것처럼 들리는 이 모든 것들은, 사실 그 깊숙한 곳에서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빛나고 있는 그 의미보다 너무도 오래되었고, 그로부터 너무나 깊이 감추어졌고, 그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페르난두 페소아, 『동요(動搖)의 서(書)』
Now as many times before, I am troubled by my own experience of my
feelings, by my anguish simply to be feeling something, my disquiet
simply at being here, my nostalgia for something never known. . . . And
the light bursts serenely and perfectly forth from things, gilds them
with a smiling, sad reality. The whole mystery of the world appears
before my eyes sculpted from this banality, this street. Ah, how
mysteriously the everyday things of life brush by us! On the surface,
touched by light, of this complex human life, Time, a hesitant smile,
blooms on the lips of the Mystery! How modern all this sounds, yet deep
down it is so ancient, so hidden, so different from the meaning that
shines out from all of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