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블랑쇼를 각별히 좋아하는 지인의 부탁으로 번역했던 것인데, 생각나서 올린다. 그런데 프랑스어 원문을 옮긴 건 아니고,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어에서 영어으로 번역된 블랑쇼 논문을 발견했다고 했더니, 그 사람이 영문본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도 상관없으니, 번역해 달라고 해서 하게 되었다. 그러나 번역을 하긴 했지만, 물론(?)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블랑쇼 너무 어렵다.-_-;) 철학 전공하는 사람들이 만약 본다면 기본개념도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고 욕할지 모르겠으나, 그냥 내 수준에서 말이 되는 정도로 했다. 그 지인도 블랑쇼가 '번역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좋다고 하면서 만족했으니 어쨌든 임무완수. 전체적으로 다 그렇지만, 특히 밑줄 친 문장은 많이 헷갈렸던 문장들. 주석에 영문을 실어놨다.






영문본 출처: Yale French Studies, No.73 (1987), pp.12-20. Translated by Susan Ha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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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원주1) Maurice Blanchot, "La Parole quotidienne(일상적 말)," (Paris: Gallimard, 1959), 355-66 을 번역한 글. [본문으로]
  2. 1907년 프랑스 켕 출생, 2003년 이블린에서 사망. 젊은 시절 몇 년간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것 이외에는 평생 모든 공식 활동으로부터 물러나 글쓰기에 전념하였다. 작가이자 사상가로서 철학·문학비평·소설의 영역에서 방대한 양의 글을 남겼다. 문학의 영역에서는 말라르메를 전후로 하는 거의 모든 전위적 문학의 흐름에 대해 깊고 독창적인 성찰을 보여 주었고, 또한 후기에는 철학적 시론과 픽션의 경계를 뛰어넘는 독특한 스타일의 문학작품을 창조했다. 철학의 영역에서 그는 존재의 한계·부재에 대한 급진적 사유를 대변하고 있으며, 한 세대 이후의 여러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동시에 그들과 적지 않은 점에서 여러 문제들을 공유하였다. 주요 저서로 『토마 알 수 없는 자』, 『죽음의 선고』, 『원하던 순간에』, 『문학의 공간』, 『도래할 책』, 『무한한 대화』, 『우정』, 『저 너머로의 발걸음』, 『카오스의 글쓰기』, 『나의 죽음의 순간』 등이 있다. [본문으로]
  3. Every individual carries in himself a set of reflections, of intentions that is to say reticences, that commit him to an oblique existence. [본문으로]
  4. The guilty party relates to the law to the extent that he manifestly does everything he must in order to be judged, that is, in order to be suppressed, brought back to the void of the empty point his self conceals. [본문으로]
  5. (원주2) 앙리 르페브르는 바로 이 제목으로 1947년 그의 첫 번째 책을 출간했다. (Critique de la vie quotidienne (일상적 삶에 대한 비평) (Paris: Grasset)) 이후 1958년에 다소 다른 지향성을 띤 두 번째 연구를 하면서, 이 첫 번째 논문의 다른 판본에 대한 서문 제목으로 이것을 쓰기도 했다. 3권에서는 이 질문들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제기했다. (Paris: Editions de l'Arche). 이 책을 출판하면서 르페브르는 자신의 반성적 사유들을 한층 더 밀고 갔다. La Vie quotidienne dans le monde moderne (근대적 세계에서의 일상적 삶) (Paris: Gallimard, 1962) 참고. (영문본: Everyday Life in the Modern World, Sacha Rabinovitch 번역 (New York, Harper and Row, 1971)). [본문으로]
  6. (원주3) 에드가 모렝(Edgar Morin)의 L'Esprit du temps(시간의 정신(?)) (Paris: Grasset, 1975); New Tredns in the Study of Mass Communication (대중매체 연구의 새로운 경향) (Birmingham, England: University 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1968) 을 참고하라. 이 책에서 모렝은 정보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이 대중 문화라고 지칭한 것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산업적 결과의 대규모 표준에 따라 생산되고, 대중적 유통 기술에 의해 분배되고, 사회적 대중, 즉 사회(계급, 가족 등)의 내부적 구조 이전에, 그것을 넘어서서 포착되는 거대한 덩어리,에게 전해진다.” 이는 당연히 한 문화의 신화, 상징, 이미지에 관한 문제이다. 그것은 “다른 문화들을 잠식시키고, 붕괴시키는 경향이 있다. . . . 그것은 20세기의 유일한 문화는 아니다. 그러나 20세기의 진정으로 강력하고 새로운 흐름이다.” 모렝은 종종 -내게는 잘못되어 보이는데- 이 문화를 다른 것들, 예를 들어 인문주의적 문화와 대립시키기도 한다. 내 생각에 “대중 문화”의 중요성은 그것을 생산함으로써 문화라는 관념 자체를 의문에 부쳐,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노출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7. We cannot help but miss it if we seek it through knowledge, for it belongs to a region where there is still nothing to know, just as it is prior to all relation insofar as it has always already been said, even while remaining unformulated, that is to say, not yet information. [본문으로]
  8. (원주4) 게오르크 루카치, L'Ame et les formes (영혼과 형식) (Paris: Gallimard, 1974), Lucien Goldmann, Recherches dialectiques (변증법을 찾아서) (Paris: Gallimard, 1959) 재인용. 영문본: 게오르그 루카치, Soul and Form, Anna Bostock 번역 (London: Merlin Press, 1971, 1974). [본문으로]
  9. What is proper to the everyday is that it designates for us a region, or a level of speech, where the determinations true and false, like the opposition yes and no, do not apply. [본문으로]
  10. An unserious seriousness from which nothing can divert us, even when it is lived in the mode of diversion; so we experience it through the boredom that seems to be indeed the sudden, the insensible apprehension of the quotidian into which one slides in the leveling of a steady slack time, feeling oneself forever sucked in, though feeling at the same time that one has already lost it, and is henceforth incapable of deciding if there is a lack of the everyday, or if one has too much of it. [본문으로]
  11. The everyday is the movement by which the individual is held, as though without knowing it, in human anonymity. [본문으로]
  12. The everyday, where one lives as though outside the true and the false, is a level of life where what reigns is the refusal to be different, a yet undetermined stir. [본문으로]
  13. (원주5) 노출로서의-움직이는, 움직이지 않는-사진. 사람들이 접근할 수도, 정면으로 쳐다볼 수도 없는, 아직 표정을 갖지 않은, (거리에 있는) 인간 존재의 등장을 준비하고 전면화하기. 사진은 이런 의미에서 모든 것을 스포트라이트 아래 놓는 일상적 출판/공표의 진실이다. Communications(소통), 1권 (1961)에 실린 롤랑 바르트의 연구 “Le Message photographique (사진적 메시지(?))”와 Image-Music-Text(이미지-음악-텍스트)라는 제목의 그의 논문집 가운데 “The Rhetoric of the Image (이미지의 수사학)”을 참고하라. 뒤의 논문의 영문 번역은 Stephen Heath (London: Hill and Wang, 1978), 32-55. [본문으로]
Translated by 金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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