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절묘하게(?) 생각나는 "This American Life"의 새라 바월(Sarah Vowell)의 가족과 함께 한 추수감사절 생존기(?). 역시 다시 들어도 재미있는 새라 바월의 어둡고도 절제된 유머. 예전에 번역해 놓았던 것을 수정해서 오랜만에 올려 봄.
"Pilgrim's Progress"[각주:1] by Sarah Vowell
-from TAL Episode #174: Birthdays, Anniversaries and Milestones
부모님께 추수감사절을 쇠러 뉴욕의 우리 집에 오시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나는 설마 엄마 아빠가 정말로 그 제안을 수락하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부모님은 뉴욕에 단 한번도 오시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미시시피 강 동쪽으로 건너와 본 적도 없고, 우리 집에 온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항상 부모님이 멀리서 장성한 딸을 만나러 오고, 그 딸은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기간 내내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그런 평범한 가정에 대한 환상을 줄곧 가지고 살아 왔었다. 그런데 꿈이 진짜 이뤄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우리들이 모이면 할 얘기가 없지 않을까 싶어 심히 걱정이 되었다. 우리 집안에는 가정의 화합을 위해 가족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사안이 한 가지 있다. 1분 30초 이상 지속되는 대화에서 다음의 화제는 절대 거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 정치, 주 또는 지방 정치, 그랜드 올 오프리[각주:2]에 헤드라이너로 선 적 없는 사람의 음악, 나의 사생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이 소위 신이라고 부르는 이. 장장 닷새다. 내가 몬타나 집에 갈 때는 대화거리가 없을까 봐 걱정하는 일은 없다. 왜냐면 우리는 매일 오후마다 영화를 보러 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명목상 함께 지내면서, 서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토미 리 존스가 다 한다. (그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봉사라고 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번엔 내 쌍둥이 언니/여동생 에이미가 --일단 생기 넘치는,이라고 해두자-- 일곱 달 된 아들 오웬을 데리고 오기로 했기 때문에, 극장은 물건너 갔다. 이렇게 된 이상 닷새 내내 영화의 힘도 빌지 못한 채, 내던져진 것이다. 우리는 미지의, 짐작컨대 적대적인, 땅으로, 신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개척자가 된 것이다. 하긴 추수감사절이니까. 필그림(Pilgrim)들에게 메이플라워호가 있었다면, 내겐 돈 주고 산 그레이비 보트(gravy boat)[각주:3]가 있다. 그나마 에이미가 엄마 아빠와 같이 오게 돼서 천만다행이었다. 에이미는 지금도 보즈먼의 부모님 댁에서 여섯 블럭 떨어진 곳에 부모님 가까이 살고 있다. 그녀가 부모님과 나 사이에서 통역자 겸 중개자 노릇을 해줄 것이다. 마치 스퀀토(Squanto)처럼.[각주:4]
에이미의 남편 제이미는 자기 형/남동생과 함께 사슴 사냥을 간다고 몬타나에 남았다. 다른 식구들은 모두 첼시에 있는 나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에이미와 오웬은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기로 해서, 나는 부모님을 23번가에 있는 호텔에 모셔다 드리기 위해 함께 나왔다. 첼시 호텔의 차양 아래에 선 엄마는 "다 왔나 보네."라고 말씀하셨다. 가장 좋아하는 책의 제목이 단순하게 "매튜"[각주:5]인 이 여인께서, 시드 비셔스[각주:6]가 자기 여자친구를 찔러 죽인 혐의를 받고 경찰에게 연행되어 갔던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그 광경이라니. 나는 "아니에요, 엄마."라며 첼시 사보이 호텔이 있는 블럭까지 엄마의 팔짱을 끼고 좀 더 걸어내려 갔다. 그 호텔은 글쎄, 번거롭게시리 매일같이 방청소를 하는 그런 곳이다. 뉴욕에 도착한 지 불과 이십 분이나 지났을까 싶은 이 시점부터 아버지는 "얘, 너 우리가 얼른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고 목 빼고 기다리고 있지?"라는, 예사롭지 않은 농담을 던지기 시작하신다. 오클라호마에 있는 친척들을 당신이 다시는 안 보고 살고 싶다는 이유로 엄마와 나, 에이미를 그들로부터 1600마일이나 떨어진 곳으로 이사시킨 나의 아버지는, 뉴욕에서 지내는 동안 평균 두 시간 간격으로, 아빠 엄마가 '잘 있어.'라는 인사를 하고 떠날 그 순간을 내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에 관한 농담을 던지셨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아버지란 정말 매력적이었지만, 한편으로 그 말이 너무도 사실이라 오히려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지 난감할 지경이었다.
식구들이 도착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나는 곧 아기 때문에 영화도 못 가고 할 말이 없을까 봐 걱정했던 상황이 기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인고 하니, 아기가 있으면 아기가 곧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침 흘리는 모습, 아무런 서사도 없는, 그저 침만 흘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 여가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물론 그 외에 관광도 있었다. 이번 여행의 첫번째 목적지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엘리스 아일랜드. 이번에 막상 가보니 엘리스 아일랜드에 간다는 것의 의미는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엘리스 아일랜드에 '간다'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당시 이민자들의 처지와 심경을 이해할 수 있는 학습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일환인지, 인파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배를 타보겠다고 한 시간 반을 찬 바람에서 떨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섬에 다다르게 되니, 도착할 즈음에 우린 자유를 갈구하는 옹송그린 민중 그 자체였다. 우리의 증조할머니 엘렌은 스웨덴에서 이민올 때 이곳을 지나갔다. 우리는 당시 이민자들이 검역을 받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를 보고, 모자를 쓴 남자들과 숄을 쓴 여자들이 줄지어 있는 사진들을 무더기로 봤다.
다들 아무 말이 없었지만, 나는 엄마 아빠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오클라호마에서 몬타나로 처음 이사했던, 아는 이도 하나 없고, 아는 바도 전혀 없는, 낯설고도 외로운 기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전시물들 가운데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어머니를 단 한 번도 뵙지 못했다."라는 구절이 적힌 편지를 읽고, 우리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훌쩍 떠나버린 뒤, 우리들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손을 흔들고 계셨던 자동차 백미러 속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뉴욕에 있다는 이유로 지금 우리는 이렇게 뉴욕에 있었지만, 엘렌의 아버지가 엘렌을 이곳에 데려온 이후 우리 가족의 후세들은 모두 전 세대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곤 했다. 어떤 면에서 미국인들이 추수감사절이라는 명절을 쇤다는 건 참 희한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면 추수감사절이란 자신이 부모의 삶과는 다른 삶을, 스스로 택한 삶의 방식대로 살기 위해 고향과 가족을 떠나왔던 사람들에 관한 명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명절을 우리는 어떻게 지내는가? 바로 우리 부모님들과 함께 지낸다. 이건 마치 독립기념일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축하하기 위해 크리켓 경기를 하고, 크럼핏[각주:7]을 먹는 격이었다.
추수감사절 아침, 부모님이 오웬을 데리고 메이시스 백화점이 주관하는 퍼레이드를 보러 나가신 사이, 나와 에이미는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나의 어머니가 외출을 하시고, 내가 요리를 했다. 그 중에서도, 콘브레드 드레싱을 만들었다. 이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어머니가 추수감사절마다 만드신 음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엄마한테 고마운 점 한 가지는, 여행 오시기 전에 여행가방 속에 옥수수가루를 싸갖고 올까라고 물어보셨으나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한 이후에, 어머니는 내가 어떻게 요리를 할 건지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물어보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오클라호마 주 출신인[각주:8] 어머니는 모스코기의 샤니(Shawnee) 사에서 만든 흰색 옥수수가루만을 쓰신다. 그래서 내가 만든 콘브레드는 콘브레드로 치지도 않으신다. 왜냐면 나는 노란색 옥수수가루를 쓰고, 무엇보다 이단행위에 해당하는, 설탕을 넣었기 때문이다. "네가 만드는 건 콘브레드가 아니야,"라고 어머니는 내 머리카락을 묘사할 때 사용하시는 김샌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네가 만드는 건 조니케이크(johnnycake)지."[각주:9]
도마 앞에 서서 세이지를 다지고 있는데, 그 순간, 나는 엄마가 나에게 드레싱을 전적으로 책임지도록 허락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갑자기 나를 후려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내가 죽을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이다. 드레싱을 책임진다는 건, 내가 진짜 다 큰 어른이 됐다는 거고, 내가 다 큰 어른이 됐다는 건 내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이고, 내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내가 틀림없이, 마침내, 반드시 죽을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는 할머니가 됐고, 내 언니/여동생은 엄마가 됐고, 나는 올해 드레싱을 노란색으로 결정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젠가 다 죽는다. 참 즐거운 명절이지 않은가?
나는 그날 저녁 식사에 뉴욕에 사는 내 친구 둘을 초대했다. 그런데 막상 그들이 올 때쯤 되자 자리가 불편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저녁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친구들과 나는 롱아일랜드에서 많은 새들을 죽게 한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자 아버지도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랑스런 일화로 대화를 이어갔다. 뷰엣의 노천 구리광에 오염된 빗물이 고여 있던 걸 마셔서 하루동안 250마리의 거위가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죽은 새 한 마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뜯어먹으면서[각주:10] 수백 마리의 다른 죽은 새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람들간의 친화력을 높이는 데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오웬이 울기 시작하고, 같은 시각 어머니는 화장실 문을 못 열어 화장실에 갇히셨고, 아버지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주머니칼을 갖고 그 문을 열어보겠다고 낑낑대고 계셨다. 그때 내 머리 위로 구름 하나가 지나갔다. 사실 나는 하루에 한두 번 정도는 투과불가능한 멜랑콜리의 방패,라고 부를 법한 기분 속에 휩싸이곤 한다. 이 방패는 말 그대로 투과불가능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내가 얼어붙어 간다는 걸 스스로 느끼면서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사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이런 주술에 걸리곤 한다. 다만 그날의 그 특정한 순간에 음산한 기분에 휩싸였던 당사자가 나였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내가 가족 중에선 내놓은 자식이냐고 물어보면, 난 우리 가족 모두가 내놓은 자식이라고 대답한다. 우리 집에 와 계신 아빠 모습을 간간이 보니 아빠는 와 계신 내내 몇 시간에 한번씩 불안하게 손가락을 우두둑거리고 계셨다. 사실 우리가 추수감사절에 집에 가면 아버지는 우리를 아예 없는 양 취급하고 노상 차고에서 시간을 보내셨다. 우리 네 사람을 한가족으로 단결시켜주는 공통분모는, 집에 틀어박혀 혼자 있는 걸 선호하고 사람을 잘 믿지 못하며 대인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우리를 가족으로 묶어주는 특징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길 좋아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가족으로서 함께하는 걸 저해한다. 그러나 역설적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우리 가족과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때,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때, 그들을 가장 사랑하는 때는 바로 이런 순간이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생겨먹었으면서도 대가 끊기지 않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다음날 우리는 우리가 가족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일을 했다. 그것은 바로 찢어져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에 다시 모였을 때, 녹초가 된 나의 어머니는 관광에 대해 불타는 열의를 보이셨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뉴욕에 다신 오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록펠러 센터 가실래요?"라고 여쭤봤더니 어머니는 "당연하지, 내가 여길 언제 다시 오게 될 줄 알고."라고 하셨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시겠냐고 여쭤보았을 때도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이유는 역시나 내가 여길 언제 다시 오게 될 줄 알고,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러분들 중에 혹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갈 생각이 있다면, 경험자로서 한 가지만 조언을 하겠다. 전망대에 올라가는 마지막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서 있을 때, 현장 안내원이 '마지막 여섯 층을 걸어서 올라가시고 싶은 분들은 지금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그 순간 연로하신 부모님과, 팩스 크기 만한 아이를 안고 있는 언니/여동생과 같이 있다면, 무조건 줄을 기다려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라. 혹시라도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면, 먼저 걸어가고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 그렇게 하는 순간 당신은, 르네상스 시대 프레스코화에 그려진 아담과 이브의 형상을 한 당신 부모님을 보게 될 것이다. 잔뜩 겁에 질려 웅크린 채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그 순간의 아담과 이브 말이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전망대가 있는 층에 도착했다. 남쪽으로는 브루클린이, 서쪽으로는 뉴저지가, 많은 사람들이 먼 곳으로부터 모여든 곳, 그리고 또 다른 삶을 만들기 위해 도망치기도 하는 곳들이 보였다. 캄캄하고 춥고 바람이 불고 있었고, 우리는 계단을 오르느라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우리는 나란히 서서 가족으로서 모두 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의 언니/여동생은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 아빠 역시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들이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When I invited my mom and dad to come to New York City to have Thanksgiving at my house, I never expected them to say yes. Not only had they never been to New York, they had never been east of the Mississippi, nor had they ever visited me. I've always had these fantasies about being in a normal family in which the parents come to town and their adult daughter spends their entire visit daydreaming of suicide. I'm here to tell you that dreams really do come true.
I was terrified we wouldn't have enough to talk about. In the interest of harmony, there's a tacit agreement in my family. The following subjects are best avoided in any conversation longer than a minute and a half-- national politics, state and local politics, any music by any person who never headlined at the Grand Ole Opry, my personal life, and their so-called God.
Five whole days. When I visit them back home in Montana, conversation isn't a problem because we go to the movies every afternoon. That way, we can be together but without the burden of actually talking to each other. Tommy Lee Jones does the talking for us. Bless his heart, that is a public service.
But my sister Amy is bringing her, shall we say, lively seven-month-old son Owen along, so the cinema is not an option. Which means five days together, just us, no movies. We are headed into uncharted and possibly hostile lands, pioneers in a new world. It is Thanksgiving. The Pilgrims had the Mayflower. I buy a gravy boat.
It's lucky that Amy's coming with Mom and Dad. Amy still lives six blocks away from them in Bozeman. She would act as interpreter and go-between among my parents and me. Like Squanto.
Amy's husband Jay has decided to stay home in Montana to go deer hunting with his brother. Everyone else arrives at my apartment in Chelsea. Amy and Owen are bunking with me, so I walk my parents around the corner to check them into their hotel on 23rd. "Here we are," says Mom, stopping under the awning of the Chelsea Hotel. There she stands, a woman whose favorite book is called, simply, Matthew----right on the spot where the cops hauled Sid Vicious out in handcuffs after his girlfriend was found stabbed to death on their hotel room floor. "No, mother," I say, taking her arm and directing her down the block to the Chelsea Savoy, a hotel where they go to the trouble to clean the rooms each day.
It is around this time, oh, 20 minutes into their trip, that my dad starts making wisecracks like, "boy, kid, bet you can't wait 'til we're out of here." My father, a man who moved us 1,600 miles away from our Oklahoma relatives so he wouldn't have to see them anymore, makes a joke, on average, every two hours he is here about how much I'm anticipating the second they'll say goodbye. I find this charming, but so disturbingly true I don't know what to say.
By halfway through the first day, I discover I needn't have worried about what we would talk about with the baby preventing us from seeing movies. When you have a baby around, the baby is the movie. We occupy an entire entertaining hour just on drool, non-narrative drool. Then there's the sightseeing. First stop, Ellis Island. The thing about going to Ellis Island is that it's a lot like going to Ellis Island.
Perhaps to help you better understand the immigrant experience, they make you stand in line for the crammed ferry for an hour and a half in the windy cold. By the time we step onto the island, we are huddled masses yearning to be free. Our great-grandmother Ellen passed through here on her way from Sweden. We watch a video on the health inspections given to immigrants, walk past oodles of photos of men in hats and women in shawls.
Though no one says anything, I know my father and mother and sister are thinking what I'm thinking. They're thinking about when we moved away from Oklahoma to Montana, how unknown that was, how strange and lonesome. I read a letter in a display case that says, "and I never saw my mother again." And I think of my grandfather, how we just drove off, leaving him behind, waving to us in the rear-view mirror. And here we are in New York, because here I am in New York. Because ever since Ellen's father brought her here, every generation moves away from the one before.
It is curious that we Americans have a holiday, Thanksgiving, that's all about people who left their homes for a life of their own choosing, a life that was different from their parents' lives. And how do we celebrate it? By hanging out with our parents. It's as if on the 4th of July, we honored our independence from the British by playing cricket and nibbling on crumpets.
Thanksgiving morning, my parents take Owen to see the Macy's parade while Amy and I start making dinner. Let me repeat that. My mother leaves while I cook, specifically cornbread dressing, a dish my mother has made every Thanksgiving since before I was born. To her credit, she has not inquired about my process since she phoned to ask me if she should bring cornmeal in her suitcase. As an Okie, my mom only uses white cornmeal processed by the Shawnee Company in Muskogee. She does not even consider my cornbread to be cornbread at all, because I make it with yellow cornmeal and-- heresy-- sugar. "You don't make cornbread," she told me in the same deflated voice she uses to describe my hair----"you make Jonnycake."
I'm standing at the cutting board chopping sage, and it hits me what it means that she's letting me be in charge of the dressing-- I am going to die. Being in charge of the dressing means you're a grown-up for real. And being a grown-up for real means you're getting old. And getting old means you are definitely, finally, totally going to die. My mother is a grandmother, and my sister is a mother, and I have decided the dressing will be yellow this year, therefore we'll all be dead someday. Happy holidays!
I have invited two of my New York friends to join us for dinner, and I was a little nervous about how everyone would get along. To my delight, the meal is smooth and congenial. My friends and I talk about the West Nile Virus killing birds on Long Island. My father counters with a lovely anecdote about an open copper pit in Butte that filled up with contaminated rainwater and killed 250 geese in one day. There's nothing like eating one dead bird and talking about a bunch of other dead birds to really bring people together.
The next morning, right about the time Owen starts to cry while simultaneously my mother jams the bathroom door and my father's on his hands and knees prying it open with a penknife, a cloud passes over me. Once or twice a day, I am enveloped inside what I like to call the impenetrable shield of melancholy. This shield, it is impenetrable, hence the name. I cannot speak. And while I can feel myself freeze up, I can't do anything about it.
Everybody in the family goes through these little spells. I just happen to be the spooky one at this particular moment. When people ask me if I'm the black sheep of the family, I always say that no, we're all black sheep. Every few hours they're here, I look over at my dad nervously crunching his fingers together. If he were at home for Thanksgiving, he'd be ignoring us and spending all his time in his shop. The thing that unites us is that all four of us are homebody claustrophobes who prefer to be alone and are suspicious of other people.
So the trait that binds us together as a family, preferring to keep to ourselves, makes it difficult to be together as a family. Paradoxically, it's at these times that I feel closest to them, that I understand them best, that I love them most. It's just surprising we ever breed.
The next day, we do the most typical thing we could possibly do as a family. We split up. By the time we all reconvene on Saturday evening, my ragged mother becomes so ambitious with her sightseeing that I can tell she's decided that she's never coming back. "You guys want to go to Rockefeller Center?" I ask. And she says, "yeah, because who knows when I'll be back again? Ditto the Empire State Building, because who knows when I'll be back again?"
If any of you are visiting the Empire State Building, may I offer some advice? If you are waiting in the very long line for the very last elevator, and an attendant says that anyone who wants to walk up the last six flights may do so now, right away, and you are with your aging parents and a sister who is carrying a child the size of a fax machine, stay in line for the elevator. But if you must take the stairs, go first and do not look back. Otherwise, your parents will look like one of those Renaissance frescoes of Adam and Eve being expelled from the Garden of Eden, all hunched over and afraid.
So we make it to the observation deck, Brooklyn to the south of us, New Jersey to the west. Places that people fled to from far away. Places that people now run away from to make another life. It's dark and cold and windy, and we're sweaty from climbing the stairs. It's really pretty, though. And there we stand, side by side, sharing a thought like the family we are. My sister wishes she were home, my mom and dad wish they were home, I wish they were home, too.
- 영국의 종교작가 존 버니언(John Bynyan)의 종교적 우의소설 "천로역정 (The Pilgrim's Progress)"에서 따온 제목. [본문으로]
- 미국 테네시 내슈빌의 라디오 방송국 WSM에서 매주 토요일 밤 진행되는 컨트리 음악 공개 라이브 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1925년 11월 28일부터 방송이 시작되어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본문으로]
- 미국에서 추수감사절 때 칠면조와 곁들여 먹는 '그레이비'를 식탁에 담아낼 때 쓰는, 배와 비슷한 모양을 한 납작한 그릇. [본문으로]
- 필그림의 정착에 도움을 주었던 미국 원주민. [본문으로]
- 성서의 '마태복음'을 말함. [본문으로]
- Sid Vicious (1957. 5. 10. - 1979. 2. 2). 영국 펑크 록 음악가. 펑크 록 장르에 큰 영향을 끼친 그룹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베이시스트로 가장 잘 알려져있다. [본문으로]
- crumpet. 잉글리쉬 머핀과 더불어 영국 전통 아침식사의 대명사와 다름없는 빵. [본문으로]
- 원문의 표현은 "Okie" 였음. [본문으로]
- 콘브레드든 조니케이크든 옥수수가루를 주재료로 한 빵이란 점에선 동일한데,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조리법에서 차이가 나는 모양. [본문으로]
-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요리를 먹는 미국의 전통.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