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른 판본에서는 "나는 심지어 국소마취조차 거부했다" "그러나, 만약 그 당시에 그런 기술이 가능했다면, 국소마취 정도는 허락했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본문으로]
  2. 남작의 다른 초기작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공책에 담겨 있던 마리아의 유혹에 관한 이 서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는 못했다. [본문으로]
  3. 브 남작이 쓴 검은 공책의 첫 페이지에 적힌 이 편린과 같은 앞에는 "2장(章)"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본문으로]
  4. 다른 판본에는 "현실의 즐거움도, 상상된 세계의 즐거움도,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다. [본문으로]
  5. 프랑스 작가 에띠엔 피베르 드 세낭꾸르(1770-1846)는 우울하고 실의에 빠진 듯한 어조가 특징적인 소설 을 썼다. 앙리-프레데릭 아미엘(1821-81)은 스위스의 미학과 철학 교수였는데, 페소아의 <동요의 서>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친 그의 유작 으로 사후에 유명해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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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르네'는 작가 프랑소아-르네 샤토브리앙의 다분히 자전적 소설에 등장한 작가와 동명인 주인공이다. 1802년 <기독교의 정수>의 일부로 출판되었다. [본문으로]
  2. Alfred de Vigny : (1797-1863), 프랑스의 시인이자 산문, 희곡, 소설 작가. 사랑의 환상이 깨지고, 정치에서도 실패하고, 프랑스 학계에서도 별로 환영받지 않았던 그는, 사회생활에서 물러나 점점 비관주의적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삶이 우리에게 내린 고통스런 저주 아래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하게 고귀한 대응책은 은거해서 금욕주의적으로 살아가는 것밖에 없다며 그런 삶의 방식을 추천했다. [본문으로]
  3. Antero de Quental : (1842- 1891)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 주로 소네트 작품과 척학자가 되고 싶어한 그의 열망으로 기억되었다. 정치에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며, 포르투갈의 사회주의 운동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케탈의 병적인 비관주의는 그의 정신적 불안정과 맞물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악화되어, 마침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본문으로]
  4. 이를 달리 표현해서 "레오파르디는 그리스어를 할 줄 알았다"라고 한 것이 또 다른 판본에서 보인다. [본문으로]
  5. 이 단락은 낱장의 종이에 타이핑되어 있었으며, "비생산자의 직업 (제목)"이라는 문구가 앞에 적혀 있었다. 짐작컨대, 이 단락만을 위한 제목이라기보다, 테이브 남작의 완성된 작품 전체의 제목 중 하나로서 고려했던 듯하다. [본문으로]
  6. 여기서 언급된 그리스 철학자는 프로타고라스이다. [본문으로]
  7. 소암 제닌스(Soame Jenyns)의 악에 관한 이론: 영국 의회의 의원 중 한 사람으로서, 제닌스(1704-1787)는 시인이자 비평가, 에세이 작가이기도 했다. 여기서 페소아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본성과 악의 기원에 대한 자유로운 질의"라는 제목의 에세이인데, 페소아는 이 글을 1934년 12월 18일자 알바로 데 캄포스의 시에서도 인용한다. [본문으로]
  8. 14세기의 프랑스인 학자 장 뷰리단은 자유의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만약 나귀의 경우 물 한 틍과 건초 한 통과 똑같은 거리 만큼 떨어진 지점에 서서 갈증과 허기 사이에서 괴로울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본문으로]
  9. 다른 본에서는 이를 "겁에 질린 사람을 나무처럼 서 있게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본문으로]
  10. 이 구절은 낱장의 종이에 필사되어있던, 1930년 3월 27일자로 기록된 유일한 글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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